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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의도 증권가 말ㆍ말ㆍ말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요동치는 주가를 보며 투자자들도 웃고 울었던 2011년 여의도 증권가는 다사다난했던 만큼이나 많은 말들이 오갔다.

증권가에서 자주 입에 오른 말들에는 투자자들과 증권업계 종사자들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겨 있다.

◇"추락하는 주가에 날개가 없다"

작가 이문열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지만 작년 8월 곤두박질치는 주가에는 날개조차 없어 보였다.

종가 기준으로 8월1일 2,172.31이었던 코스피가 17%나 낮은 1,801.35로 떨어지는 데 거래일로 따져 엿새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루에 수십포인트씩 뚝뚝 떨어지는 지수를 지켜보는 투자자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조정 협상이 원만히 타결되고 유럽 재정위기가 잦아들면 코스피가 랠리를 펼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기에 투자자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코스피가 8월에는 2,300선도 무난히 넘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내놓았던 증권업계 종사자들도 할 말을 잃었다.

시황 얘기가 나오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추락하는 주가에 날개가 없다"

◇"차ㆍ화ㆍ정의 질주"

작년 상반기 증권업계 사람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린 말은 `차(車)ㆍ화(化)ㆍ정(精) '이었다.

여성의 이름처럼 들리는 이 말은 자동차, 화학, 정유업종을 한데 묶어 부르기 위한 신조어였다.

작년 8월 코스피가 폭락하기 전만 해도 이들 업종의 주가 상승세는 눈부셨다.

작년 초부터 초여름까지 현대차와 기아차는 50∼60%의 수익률을 보였다. 화학 업종에 속하는 OCI와 정유기업인 S-Oil 주가는 거의 2배로 뛰었다. 2010년 말부터 작년 초까지 상승 랠리를 펼친 IT 업종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차화정이 상승세를 탄 데는 작년 3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반사이익의 영향이 컸다. 일본 경쟁업체들이 공급 차질을 빚는 동안 국내 차화정 기업들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렸다.

◇"소녀시대에게 물어봐"

작년 8월 이후 코스피가 폭락하고 차화정의 강세도 꺾인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코스닥시장의 엔터테인먼트와 게임 종목들이었다.

세계 경기침체의 영향을 덜 받는 이들 종목은 작년 하반기 강한 상승세를 보이며 투자 대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이수만 회장이 이끄는 에스엠의 주가 상승세는 놀라웠다.

작년 6월만 해도 1만9천원 정도에 불과하던 에스엠 주가는 11월에는 6만2천원까지 올랐다. 불과 5개월만에 2배 이상 뛰었다.

에스엠이 6월 유럽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자 `K팝' 한류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으로 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고 주가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에스엠 소속 연예인들 중에서도 단연 주목받은 것은 여성그룹 `소녀시대'였다. 증권가에서 에스엠 주가의 놀라운 상승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이 한마디로 충분했다. "소녀시대에게 물어봐"

◇"여의도를 점령하라"

작년 하반기 주가 폭락으로 시름에 잠긴 증권가는 탐욕의 중심지라는 오명까지 써야 했다.

금융자본의 탐욕을 문제삼은 미국 월가 시위가 발생하자 국내 금융업계도 예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은행과 증권사가 높은 수수료와 이자 수익으로 손쉽게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끓어올랐다.

월가 시위대의 캐치프레이즈인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를 본딴 구호까지 등장했다. 진보단체들은 금융권의 탐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여의도를 점령하라"고 외쳤다.

증권사들은 수수료를 인하하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비난 여론을 수용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초래하고도 천문학적 성과급을 챙긴 월가 금융권과 여의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볼멘 목소리도 나왔다.

◇"유럽만 쳐다본다"

작년 하반기 주가 흐름을 좌우한 최대 변수는 유럽 재정위기였다.

재정위기는 그리스를 넘어 스페인과 이탈리아, 심지어 유로존 핵심국인 프랑스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며 투자자들이 땀을 쥐게 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유럽 국가와 은행 신용등급을 강등할 때마다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유럽 정책당국의 대응은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지지부진했다.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유럽에서 시시각각 들려오는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증시 전체가 유럽만 쳐다보는 형국이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재정위기 해결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투자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때문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휴가를 떠나 공식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증시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나왔다.